웹툰 <마음의 소리>와 하이데거의 불안
12살 딸, 보리가 자기 전에 키득거리는 이유가 궁금해 보기 시작한 웹툰이다. 조석이라는 작가가 2006년부터 연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만화를 보면서 새로운 웃음의 방식을 경험했다. 뱃속으로부터 스멀스멀 웃음이 올라와 목에서 캑캑거리게 만드는, 손발이 아니라 내장부터 오글거리게 만드는 그런 웃음이 있었다!
이 만화의 제목은 다소 철학적이다. ‘마음의 소리’라니, 뭔가 피상적이고 모방적이며 충동적인 욕망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열정에 대한 자기 배려를 말하는 듯하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진실한 소망에 따르는 행동을 촉구하는 것인가...? 그러나 나의 짐작은 크게 어긋났다. 그러나 이 만화는 마음의 소리를 정말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러면 어떤 ‘마음’인가? 바로 찌질한 마음이다. 부끄러운 실수를 한 날이면, 그 때 내뱉었던 말이나 행동이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다.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다가 혼자 자조하다 상대방의 반응을 떠올리곤 다시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리 못났나 후회하는 심정. 벽을 마주한 방구석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쪽팔림’의 소리가 바로 찌질한 마음의 소리이다.
일상다반사인 실수를 하고, 실수를 만회하려 잔머리를 굴리다 일은 커지고 수습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나의 실수와 잔꾀를 누군가에 간파당한 채 상대와 눈을 마주치는 대략 난감의 장면에서 종종 마음의 소리가 울린다. 이 소리는 첫키스의 날카로운 종소리와는 전연 다른 불협화음인데 꽤나 지속적으로 울려 퍼진다.
내 마음속의 민감하고 연한 살들이 떨리면서 간절하게 상대에게 연민을 구걸하는 눈빛을 보낸다. 상대도 어쩔 수 없다. ‘저 사람이 실존적 바닥을 치고 있구나.’ 여기며 이해해 줄 수는 있으나 대개 ‘못 볼 걸 봤네..’ 생각한다. <마음의 소리>는 바로 이러한 순간을 놀랍도록 잘 잡아낸다. 내가 아는 한, 이런 게 예술적 주제로 이토록 깊이 있게 탐구된 적은 없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0853&no=680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0853&no=676
그 깊이는 가히 하이데거가 말하는 ‘불안’에까지 닿는다. 하이데거는 불안이란 어디로부터 도망을 가는 것이라 하며, 그 ‘어디’란 바로 ‘나 자신’이라 한다. 정말 <마음의 소리>의 인물들은 사소함으로 무너지며 우스꽝스러워진다. 그리고 불안해하며 도망가려다가 더 큰 불안과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내면의 부끄러움을 만난다.
그러나 하이데거 식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도망가려는 ‘나’가 ‘본래의 나’이다. 하이데거는 그 본래의 나는 이 세계가 더 이상 편안하고 안전하고 포근한 집 같은 곳이 아니라 여길 때 불안해하며 도망가려 한다고 한다. 그러니 불안과 도망치고 싶은 심정은 곧 우리가 본래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소리>에서 인물들은 자못 견고해 보이며 그들이 푹 빠져 있는 일상적 환경과 관계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상적 삶은 작은 실수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인물은 안절부절 불안해한다. 그것을 보며 절절히 공감하면서 매일매일 말하고 움직이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한 일인지 체감하는 한편, 그 불안을 웃으면서 대면하는 삶의 실천적 지혜를 배운다.
하이데거는 불안으로부터 자기가 매달려 있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무’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하고, 거기서부터 진짜 자기를 스스로 택할 수 있게 되는 ‘결단’에 이를 수 있다 했다. 물론 조석은 희극 작가로서 거기까지 가지 않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난 취향이 좀 B급이다. 그래서인지 조석이 더 낫다. 어쩌겠는가. 그냥 웃으며 살아야지~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황혜진 교수 페북에서 퍼옴
댓글 없음:
댓글 쓰기